현각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예일대학교에서 철학과 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과 하버드 대학교에서 종교철학을 공부한 폴 뮌젠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이런 사람들을 엘리트 지식인이라고 부릅니다. 명문 대학교를 나왔는데다가 전공도 철학과 문학 등 뭔가 남들과 달라보이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우리는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합니다. 이 경우에는 아마 학력과 엘리트적인 이미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우리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그의 다른 이름은 현각. 그는 한국에 머물며 부처님의 말씀을 설파하고 마음을 수행하는 승려입니다. 그가 출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하버드 대학원 재학 중 화계사 조실 숭산 대선사의 설법이었습니다. 이후 참된 나를 찾겠다는 결심하에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것을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가 쓴 책인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법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숭산의 설법집 ‘선의 나침반(The Compass of Zen)’과 ‘세계일화(The Whole World is a Single Flower)’,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을 영어로 번역한 사실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저는 비록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의 궁극적인 방향이 그와 다를지라도 그의 인생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수행을 통해 참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면서 모두 목적을 갖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그 목적을 알지 못한다면 인생을 제대로 살아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우리가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서 남을 위해 살 수는 없습니다. 내가 잘하는 것을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삶의 목적에 집중할 수 없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런 현상을 현각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세속의 재미는 나타났다 사라진다. 권태에 빠져들기 쉽다. 수행자가 되기 전 내 삶은 항상 무언가를 좇는 삶이었다. 돈, 명예, 권력, 사랑…. 사람들은 달콤한 속세의 것들을 어떻게 버릴 수 있었느냐 묻지만 그건 꿀이 아니라 독이었다. 승려의 길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운이 좋았다."


이 말은 우리가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하지 않으면 세상 속에서 자신을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삶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바쁘고 빠르게 돌아갑니다. 스스로를 깊이 바라보고 생각할 여유 자체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면서 지금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지 확인할 시간조차도 없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언가에 집중하더라도 이게 정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계속 했을 때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를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몰입의 목적을 명확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모두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시간이라는 자원 때문입니다. 원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인생은 질적으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노는 사람과 공부하는 사람의 인생으로 구분지어 사람을 바라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들의 인생에서 원하고자 하는 목적이 없이 단순히 시키는 대로 무언가를 한다면 나중에는 분명히 좋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것입니다. 현각스님을 살펴보면 이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좋은 학벌이 있었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이를 과감하게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는 승려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천했다는 것이죠. 


비록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인재가 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잘 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을 통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도록 노력합시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한 이유조차 없는 상태에서는 인생을 의미있게 살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하는 이유에 대한 목적을 갖는 것 혹은 목적을 찾고 이를 이루기 위해 몰입하는 것은 삶의 질을 높이고 나를 가치있게 만드는 소중한 과정입니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톰 라비-


장서가와 애서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 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속에 내포된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의 두 단어를 모두 좋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이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장서가는 책을 수집하는 사람이고 애서가는 책에 있는 지식을 수집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사는 사람의 지식수준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반만 맞는 말입니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이라는 책을 보면 위에서 언급한 장서가와 애서가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저자인 톰 라비는 지독한 장서가였고 그렇기에 책을 사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았습니다. 똑같은 전집을 3-4세트나 사고도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책을 사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으니 이 사람의 책에 대한 집착은 놀라운 수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책에서 얘기하는 책 중독자는 명품쇼핑족에 가깝습니다. 명품을 보면 지나치지 못하고 카드 할부를 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사고 보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책 중독자는 단지 중독 대상이 명품에서 책이라는 차이점밖에는 없습니다. 책 판매량이 적은 한국에서는 사실 이런 사람들이 많지 않겠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은 한 번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축적하여 삶에서 써먹기 위함입이다. 하지만 저는 주변에서 책을 사기만 하고 보지도 않았는데도 지식이 생겼다고 믿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참 애석한 일입니다. 책을 많이 사지 않더라도 


제대로 읽은 책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만큼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런 경우 사람을 바꾼 원동력은 책의 수량이 아니라 책 안에 담긴 좋은 내용입니다. 어느 순간 읽은 책의 한 문장으로 인해 인생의 목적이 생기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정화되기도 하죠. 


제가 즐기는 취미인 악기 연주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사실 악기를 만질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실력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악기의 성능을 탓합니다. 연주를 잘하는 사람들은 악기가 좋지 않아도 그 가운데서 최고의 소리를 뽑아낼 수 있죠. 이 사례를 앞서 말씀드렸던 책에 비교한다면 이해가 쉬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단순히 좋은 책을 모으는 것보다는 책을 읽으며 나의 지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과거의 유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닏다. 새로운 것을 배우지 않고 자신을 위한 투자에 인색한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은 책사는 돈을 아까워하고 겉을 꾸미는데 들이는 돈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꾸미는 것이 나쁜 건 아니지만 겉만 아름답다고 해서 그 사람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움이 인정받기 위해서는 겉과 속이 모두 꽉 차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자신을 어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쓰임 받을 곳이 줄어든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나이가 많던 많지 않던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익혀야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조합해내는 창조력까지 갖춘다면 우리는 세상을 살아갈 무기 하나를 더 확보할 수 있습니다. 장서가가 되지 말고 애서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많습니다. 다만 우리의 눈에 띄지 않은 책이 있을 뿐입니다. 그걸 발견하는 일은 전적으로 우리의 몫입니다. 


위의 글은 제가 쓴 '하버드 도서관 24시'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된 것입니다. 
하버드 도서관 24시 구매처 
(하단의 책사진을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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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비

책과 언어, 음악을 통해 평화를 얻고 싶어하는 이의 소소한 일상 (강연, 출판 및 원고 문의 : elcsha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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