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1일 뉴욕 타임즈에 한 편의 기고문이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에게 대한 폭행’이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이 장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이라고 생각했던 한국교육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세계에 충격을 안겼습니다. 기고가인 구세웅씨는 전 예일대 한국학 연구원 강사 출신으로 어린시절 치열한 입시를 피해 캐나다로 유학을 온 사례, 강남의 유명 입시학원에서 고급 영문법을 가르쳤던 사례 등을 포함한 다양한 내용을 글에 녹여내었습니다. 


기고문의 핵심내용은 ‘한국의 교육환경은 기본적으로 뛰어난 성적을 내는데 도움이 되지만 이를 위해 아이들은 행복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입니다. 학부모가 원하는 숫자를 보여주기 위해 전국의 아이들은 지금도 학원에서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비단 입시로 유명한 서울 강남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도는 다를 수 있지만 원하는 성적을 얻으려면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구씨는 이런 상황을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곳과 같은 입시학원(한국어로 학원으로 알려져 있는)은 한국교육의 중심기둥이자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녀들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들의 욕망의 상징이다. ……(중략) 학생들은 보통 방과 후 밤10시 또는 더 늦게까지 이곳에 머문다. 부모가 이끄는대로 여러 교육장과 교육프로그램에 끌려다니는 한국 학생들의 평균 하루 공부시간은 13시간에 이르며, 고등학생의 평균 수면시간은 공부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겨우 5.5시간에 불과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 정작 수업을 받고 미래를 설계해야 될 학생들의 열망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나를 위해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틀 안에 내가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아이들의 총명한 눈빛은 사라집니다. 열심히 해서 자신을 발전시킨다 해도 결과는 모든 사람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명감을 상실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인생을 수동적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조선 학술계에 있어서 엄청난 축복이었던 다산 정약용은 베껴쓰기만 해도 수십년이 걸릴 500여 권의 책을 유배 18년 동안 정리했습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서도 18년 동안 500권의 책을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굳건한 바탕공부 아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돕는 사명의식이 없었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능력을 보유하고도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현대 한국학의 시조이자 유명한 서예가인 이광사가 그 주인공입니다. 역적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유배지를 떠도는 생활을 했지만 동국진체(원교체)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만들어 선비들의 기를 확 죽여버린 인물이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광사보다는 추사체로 유명한 김정희를 더 많이 기억합니다. 이에 실망한 이광사는 세상을 원망하며 평생을 보냈습니다. 박에다 글을 써 밖으로 띄워보내며 울분을 풀었고 글씨를 팔아 벽장을 값나가는 물건으로 채워놓으며 삶의 목적을 조금씩 잊어갔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머물렀던 완도에서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례를 학생들에게 적용해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발전시키는 것은 즐거움과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사명의식입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교육환경에서 사명의식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점수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더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사자성어가 이 상황에도 활용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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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비

책과 언어, 음악을 통해 평화를 얻고 싶어하는 이의 소소한 일상 (강연, 출판 및 원고 문의 : elcsha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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