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될까? 너는 모의고사를 만점 받았으니까 영어를 잘한다고 대답해줘야 할까 아니면 너는 아직도 배울게 많은 햇병아리라고 얘기해줘야 될까? 내가 만약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그 친구에게 이렇게 얘기해줄 것이다. 고등학교 모의고사에 나오는 영어지문의 내용을 영어로 요약할 수 있고 지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외국인과 영어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내 기준에 따르면 아마 한국에 있는 고등학생 중 아주 일부만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일 것이다. 하지만 10년 전에 비하면 영어를 잘하는 사람의 수는 아주 많이 늘어났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우리가 그동안 뿌린 돈이 얼마인가? 그렇게 믿지 않으면 우리가 투자한 수십 년의 세월과 엄청난 돈이 아까우니 그렇게 생각해야 마음이 편안해 질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1998년도에 영어 잘하는 사람의 정의는 모의고사 성적이 70점대고(이 당시 모의고사 외국어영역은 80점이 최고점이었다) 단어를 많이 알아서 문제를 보면 1분 안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하면 말하기의 중요성은 전혀 강조되지 않고 오로지 열심히 읽고 답을 찾는 것만 잘하면 최고였다는 뜻이다. 게다가 내가 살았던 곳은 강원도 산골마을이어서 서울에 비하면 ‘놀자’라는 분위기가 팽배해있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경향은 대도시와 비교했을 때 매우 심하게 나타났다. 여기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는 개울가에서 도롱뇽이나 개구리를 잡으면서 놀았고 중학교 시절에는 매일 같이 축구, 농구를 하며 들고 뛰던 시절을 보냈으니 영어를 잘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 동네에서는 나름 별종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고등학교의 수업 분위기가 어디 달라지겠는가? 오로지 문제 잘 풀고 외국어 영역 점수 높으면 장땡이었다. 요즘에는 중고생들도 외국에 자주 나갔다 오는데 내가 살았던 곳은 전학생조차도 전교에 한두 명이었을 정도로 귀했으니 완전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생각했던 영어 잘하는 사람의 기준도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었다. 
 

 나는 학생시절에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다. 공부가 그나마 내가 했던 것 중 제일 나았는데, 그렇다고 완전 상위권도 아니고 중간보다는 조금 위고 최상위권보다는 아래인 수준이었다. 그래도 부모님께 걱정 안 끼쳐드리고 조용히 학교를 다녔으니 이도 감사해야 될 일이었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때가 되면 운동을 잘하고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원래 사람은 자기가 못하는 걸 부러워하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 와중에 내가 그래도 애착을 가지고 좋아했던 것이 영어였다. 다른 건 몰라도 영어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영어만큼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열심히 공부한 것에 비해서 실력은 형편없었지만 나름 자존심이란 게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적성이 풀렸고 그렇게 영어를 공부해나갔다. 이때는 영어를 통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중학교 때에는 주변의 추천을 받아서 영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기도 했었는데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그래도 대회를 한 번 나가니 친구들은 나를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대접해줬고 철없던 나는 외국어를 잘한다고 자만하게 되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올라오니 중학교와는 달랐다. 중학교 때는 학교지문만 보면 다 해결이 되었고, 시험 문제도 쉬워서 열심히 보면 성적이 어느 정도 나왔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듣도 보도 못한 모의고사라는 것을 치기 시작했고 모의고사의 시험범위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공부해야 될지 몰라 나는 영어 공부에 손을 놓게 되었다. 그래서 나의 첫 모의고사 점수는 꽤 안 좋게 나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80점 만점에 40점대였으니까 나름 영어천재라고 생각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노릇이었다.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될 시점이 된 것이다.

 요즘에야 인터넷이 발달되어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지만 그 때는 그렇지 못했다. PC방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98년도 말에나 생겼고 이용료도 2000원으로 꽤 비쌌다(참고로 그 당시 내 한 달 용돈은 15000원이었다). 그리고 인터넷은 연결도 되지 않았거나 연결이 되었더라도 속도가 엄청 느렸고 친구들은 대부분 그 당시에 출시되어 인기를 누렸던 게임인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위해 PC방을 찾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근처에 있는 서점에서 책을 보거나 주변의 지인에게 물어봐야 했었다. 만약 이 때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서 열심히 공부했다면 지금의 실력에 오르는 시간이 더 단축되었겠지만 이 당시 난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주변의 친구들에게 문의를 했었다. ‘영어를 잘 한다는 게 뭘 의미하는가?’를 말이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게 내가 했던 첫 번째 실수였다. 친구들이 나에게 시험성적 잘 나오는 것이 최고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나도 모의고사 성적 좋고 학교 시험성적 잘 받으면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친구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확실하게 굳힐 수 있었다. 후에 이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거의 3년이나 지나서 깨닫고 고등학교 때의 그 치열했던 공부의 순간조차도 후회하게 되지만 당시의 나는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 만일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 주말에 시간을 내서 서울의 유명한 분을 찾아가서 자문을 받았더라면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글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결과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때 물어보지 않았으니까.

 그 다음에 내가 찾아간 곳은 학교 교무실이었다. 모의고사 성적을 올리려면 선생님을 찾아가서 공부법을 질문해야 됐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단어와 문법을 공부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해주며 주요 단어와 문법사항이 수록된 책을 소개해주었다. 정말 감사했다. 열심히 메모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난다. 그만큼 나는 절박했다.

 

길어서 2개로 나눕니다^^ 나머지는 다음 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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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비

책과 언어, 음악을 통해 평화를 얻고 싶어하는 이의 소소한 일상 (강연, 출판 및 원고 문의 : elcsha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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