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지식을 익히면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모든 지식이 삶에서 쓸모있지는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위의 문장은 근거가 없어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는 지식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사실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옛 선현의 글은 찌꺼기다'라는 문장의 의미를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이 말은 제나라 환공과 윤편 (수레바퀴를 깎는 장인) 사이의 대화 중 장인인 윤편의 말입니다. 그 당시 환공은 선현의 지혜가 담긴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에 윤편의 말에 기분이 상했습니다. 물론 제 입장도 환공과 같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현의 글이 쓰레기라고 말하면 기분이 좋을 사람은 그다지 없을 것입니다. 

왜 윤편은 환공이 기분 나빠할 것임을 알면서도 이런 말을 했을까요? 전문가들은 이 사례에서 지식의 속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특정 인물이 어떤 사건에 대해 자신의 정립된 이론을 내놓을 경우 그 이론은 얼마나 신뢰가 있을까요? 저는 이 질문에 '지식은 개념화 된 그 시점까지만 진리이다'라는 대답을 내놓고 싶습니다. 특정 현상을 잘 관찰하여 내놓은 자신만의 생각이 항상 진리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백조는 희다'라는 명제가 수백 년간 지속되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검은 백조가 나타나면서 진리가 깨지는 것이지요. 윤편이 말하고자 했던 바도 바로 이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시야를 넓혀야 합니다. 같은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크냐 작냐에 따라 깨달음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내가 얼마만큼의 시야를 갖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지식용량이 결정되지요. 그래서 혹자는 신을 이야기 할 때 '영원한 현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지식을 소유하면 우리는 상대적인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루소의 '인간불평등기원론'을 보면 사유재산과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의 제정이 차별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산과 자신의 권력을 잘 키우고 유지하려면 지식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공부는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슬픈 일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지식을 소유하되, 이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지금 내가 있는 곳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데 지식이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실천이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합니다. 말로만 무엇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천하고 느끼며 스스로에게 좋은 것을 찾아나갈 수 있다면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만에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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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비

책과 언어, 음악을 통해 평화를 얻고 싶어하는 이의 소소한 일상 (강연, 출판 및 원고 문의 : elcshaw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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